2025년 건축계의 화두는 단순히 눈에 띄는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환경, 그리고 사회의 복잡한 문제에 해답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올해의 건축 트렌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탄소중립 건축, 하이브리드 공간, 사회적 포용성입니다. 이 세 키워드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얽혀 있으며, 이를 가장 잘 구현한 건축가들은 단순한 설계자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공간의 전략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각 키워드가 주목받게 된 배경과 대표 건축가, 그리고 그들의 주요 작품을 심층 분석합니다.
탄소중립 건축: ‘제로’라는 목표를 향한 실험
탄소중립 건축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 가까워졌습니다. 건축 분야는 전 세계 탄소 배출의 약 37%를 차지한다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보고가 발표된 이후, 업계의 시선이 한층 엄격해졌습니다. 올해 눈에 띄는 흐름은 재료 순환과 에너지 자립을 동시에 실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덴마크의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는 코펜하겐의 ‘코펜힐(CopenHill)’ 프로젝트 이후, 올해는 모듈형 목재 주거단지 설계로 다시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그는 “탄소중립은 단순히 태양광 패널을 얹는 게 아니라, 건물이 생애주기 전체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의 올해 작품은 100% 재활용 목재와 지역 조달 자재를 사용했으며, 건물 운영 전력의 80%를 현장에서 자체 생산합니다. 한국에서는 승효상이 이끄는 ‘이로재’가 기존 노후 건물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독창적인 탄소 절감 방식을 선보였습니다. 단열 성능 개선과 고효율 창호 교체를 통해 에너지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철거 대신 재구조화를 통해 건설 폐기물을 최소화했습니다. 승효상은 “건물이 오래 사랑받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이라고 말하며, 인간 중심 철학을 덧붙였습니다. 이 흐름의 특징은 기존 건물을 어떻게 유지·개선해 자원 소비를 줄일지가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는 점입니다.
하이브리드 공간: 경계가 흐려지는 장소의 재해석
하이브리드 공간은 단순히 ‘용도가 여러 개인 건물’이 아닙니다. 물리적·디지털 경계, 업무·생활, 개인·공공 영역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환경을 지칭합니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와 유연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건축계는 ‘하나의 공간이 어떻게 하루 동안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쿠마 켄고(Kengo Kuma)는 올해 도쿄 시내에 완공된 ‘스마트 파빌리온’에서 하이브리드 공간의 진수를 보여줬습니다. 이 건물은 아침에는 오피스로, 오후에는 전시 공간으로, 저녁에는 커뮤니티 모임 장소로 변신합니다. 목재와 반투명 패널을 사용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고, 모듈식 가구를 활용해 공간 배치를 즉각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유럽에서는 헤더윅 스튜디오(Heatherwick Studio)가 런던 도심의 구 산업지구 재생 프로젝트에서, 상점·카페·공유 오피스·공원 기능을 하나의 연속 동선에 배치했습니다. 방문객은 건물 내부를 거닐다가 어느 순간 야외 정원에 서 있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는 공간이 기능과 성격을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대표 사례입니다. 하이브리드 공간의 가장 큰 의미는 ‘효율’이 아니라 ‘유연성’입니다.
사회적 포용성: 건축의 윤리와 책임
2025년 건축계 담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포용성’입니다. 이는 단순히 장애인 편의시설을 잘 갖추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약자·소수자·저소득층이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건축 철학을 의미합니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프란시스 케레(Francis Kéré)는 독일 베를린 외곽에 설계한 커뮤니티 센터에서 난민과 현지 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으며, 건설 과정에도 지역민이 직접 참여했습니다. 남미에서는 칠레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가 올해 완공한 사회주택 프로젝트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는 정부 예산의 절반만으로 집을 지어주는 대신, 나머지 절반은 주민이 직접 확장·개선할 수 있도록 ‘절반의 집’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각장애인 협회, 휠체어 사용자 그룹, 청각장애인 단체와 협력해 공공 도서관을 설계한 사례가 있습니다. 포용성은 점점 더 많은 공모전과 수상 기준에서 필수 항목이 되고 있습니다.
키워드의 상호작용과 향후 전망
올해의 세 키워드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탄소중립 건축은 하이브리드 공간과 결합해 ‘다중 용도 에너지 자립 건물’로 발전하고, 포용성은 하이브리드 공간 설계에서 필수 요소로 작용합니다. 향후 5년간 건축 설계에서 기술 통합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AI 기반 에너지 관리, AR 설계 시뮬레이션, 지역 맞춤형 모듈 건축이 현실화될 것입니다. 다만, 기술이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는 건축의 본질을 희석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2025년 건축계는 환경·기술·사회라는 세 축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상태에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하이브리드 공간, 포용성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앞으로 건축가들이 피할 수 없는 숙제입니다. 올해의 대표 건축가들이 보여준 행보는 이 세 키워드가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사례입니다.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 흐름 속에서 기술과 철학을 함께 발전시키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