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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건축 거장들의 성장과 설계 철학(일본, 중국, 인도, 한국)

by wasabi-soso 2025. 8. 8.
일본 건축물

아시아의 건축은 지역의 오랜 전통과 급격한 근대화가 뒤엉킨 독특한 궤적을 걷고 있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도 기후와 재료, 사회구조가 달라 설계의 질감이 달라집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 중국, 인도, 한국을 대표하는 여섯 명의 건축가를 사례로 삼아, 그들의 성장 배경과 주요 작품, 설계 철학을 인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단순한 연대기 나열이 아니라, 각 작품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 그 ‘이유’와 ‘현장성’을 읽어내는 데 초점을 둡니다.

1) 일본 — 안도 다다오 (安藤忠雄)

안도 다다오는 전형적인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복서로 활동하던 시절을 지나 스스로 설계와 현장을 공부했습니다. 그 점이 그의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장성’과 ‘직관’이 강한 설계 태도입니다.
대표작으로 흔히 거론되는 빛의 교회(Church of the Light, 1989)는 작은 규모지만 설계 의도가 분명합니다. 두껍게 세운 콘크리트 벽에 십자가 모양의 틈을 내 빛이 드리우도록 한 것은 장식보다 ‘경험’을 선택한 전형입니다. 그 공간에서는 재료의 거친 결과 빛의 섬세함이 만나 감정이 일어납니다.
치추 미술관(Chichu Art Museum, 나오시마, 2004)은 다른 결의 실험입니다. 건물을 땅에 부분적으로 묻고 자연광을 정교하게 통제해 작품과 건축, 관람자의 동선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자연과 맞닿는 지점에서 건축은 배경이 아니라 ‘매개’가 됩니다.
안도의 철학은 단순합니다. 재료를 덜수록 본질이 보인다고 보는 그의 태도는 때로는 차갑게 보일 수 있으나, 그 안에서 사람의 감각은 더 뚜렷해집니다. 실무자는 그의 작업에서 디테일의 엄격함빛 처리를 배워야 합니다.

2) 일본 — 구마 켄고 (隈研吾)

구마 켄고는 안도와는 다른 결을 지닙니다. 그는 ‘목재’와 같은 전통 재료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인간적 스케일을 회복하려 한 디자이너입니다. 도쿄대와 해외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적 감각을 얻었지만, 언제나 지역성과 손맛을 강조했습니다.
아사쿠사 문화관광센터(Asakusa Culture Tourist Information Center, 2012)는 그가 도시 맥락을 읽는 방식이 잘 드러나는 예입니다. 목재 느낌을 살린 파사드는 고밀도의 도시 풍경 속에서 사람의 눈길을 잡습니다. 과장되지 않은 스케일, 낮은 천장고, 계단의 리듬 하나까지 사람을 먼저 생각한 설계입니다.
구마의 다른 작업들은 재료의 감촉과 인간적 체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성능을 확보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큰 조형보다 사람의 몸을 먼저 생각하라.”

3) 중국 — 왕수 (王澍)

왕수는 중국 전통을 현대 건축으로 다시 읽어낸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는 건축을 통해 ‘기록’과 ‘기억’을 다루었습니다.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흔적을 보존하려는 시도입니다.
닝보 역사박물관(Ningbo Museum, 2008)은 지역 벽돌과 현지 장인들의 기술을 재발견해 외피를 쌓은 건물입니다. 외관은 파편처럼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공간들이 이어집니다. 왕수는 단지 옛 것을 재현하지 않습니다. 옛것의 제작 방식과 사회적 맥락을 현재의 기술과 결합합니다.
그의 작업은 건축을 ‘기호’가 아니라 ‘기록’으로 보게 만듭니다. 재료의 역사성과 현장의 손길을 설계에 녹이는 태도가 핵심입니다.

4) 중국 — 아이 웨이웨이 (艾未未)

아이 웨이웨이는 전형적 건축가라기보다 예술가적 실천가입니다. 건축 설계에 직접 참여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정치적 관심을 건축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가장 알려진 사례는 베이징 국가체육장(버드네스트, 2008) 참여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이 거대한 이벤트의 상징으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아이 웨이웨이는 건축을 매개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설치작업을 병행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건축적 재료가 정치적 담론을 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설계자는 사회적 맥락을 의식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그의 작업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5) 인도 — 발크리슈나 도시 (Balkrishna V. Doshi)

도시는 인도의 근대 건축을 지역화한 대표적 인물입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았지만 인도 고유의 기후와 사회구조를 반영해 설계를 바꾸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사회의 요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IIM Ahmedabad의 포치와 통풍 설계는 인도 기후에 맞춘 고전적 해법입니다. 두꺼운 벽체와 깊은 처마, 자연 환기는 외형의 아름다움보다 기능적 안정성에 초점을 맞춰 설계되었습니다. 저비용 주택 실험과 커뮤니티 설계는 건축이 교육과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철학은 분명합니다. 건축은 사회적 공공성에 기여해야 합니다.

6) 한국 — 승효상 (Seung Hyo-sang)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을 내세운 한국적 건축가입니다. 여백, 마당, 재료의 시간성 같은 동아시아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포항 빛의 교회(Light Church)는 빛과 여백으로 종교 공간을 다시 읽어낸 사례입니다. 콘크리트를 사용하면서도 표면과 결을 통해 온기와 시간의 흔적을 드러냅니다. 서울 시민청 프로젝트는 역사적 건물과 현대적 공공 공간을 잇는 세심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승효상은 과잉을 뺀 뒤 남은 것으로 의미를 만들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작은 스케일의 설계에서도 공공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

여섯 명의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장소성’, ‘재료성’, ‘사회적 책임’입니다. 단, 표현 방식은 각기 다릅니다. 안도는 빛과 재료, 구마는 목재와 스케일, 왕수는 기록과 재료, 아이 웨이웨이는 담론, 도시는 사회적 인프라, 승효상은 여백과 서사를 통해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