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은 1979년에 제정된 이후, 세계 건축계에서 가장 높은 영예로 여겨져 왔습니다. 매년 한 명 혹은 팀에게 수여되는 이 상은 단순히 ‘멋진 건물’을 세운 사람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건축의 방향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에게 주어집니다. 시대별 수상작을 살펴보면 건축이 기술, 미학, 사회적 역할에서 어떻게 변모했는지 흐름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이번 글에서는 1980~90년대, 2000~2010년대, 그리고 2020년대 이후라는 세 구간으로 나누어, 각 시기의 대표 수상자와 작품이 지닌 특징을 해부하듯 살펴보겠습니다.
1980~90년대: 현대 건축의 정체성 확립과 조형 실험
이 시기는 ‘건축이 건물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무르익던 시기였습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은 기존의 틀을 흔들고, 형태와 재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오 밍 페이(1983)는 루브르 박물관에 유리 피라미드를 세웠습니다. 당시 프랑스 안팎에서는 “역사적 건물에 유리를 덧씌우다니”라는 비판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전통과 현대의 대화를 이끌어낸 상징적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투명한 유리와 날카로운 대칭성이 고전 건축 속에서 빛을 발하는 장면은 지금도 많은 건축가들이 인용합니다. 또 프랭크 게리(1989)는 금속과 곡선으로 ‘건물’이 아닌 ‘거대한 조각’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그의 실험은 훗날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이어졌고, 한 도시의 경제까지 바꿔놓는 ‘빌바오 효과’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타다오 안도(1995)는 노출 콘크리트와 빛이라는 간결한 재료로 깊이 있는 감성을 전달했습니다. 재료 자체의 거친 표면과 빛의 각도를 이용해 방문자가 ‘머무는 순간’을 경험하게 했죠. 이 시기의 건축은 기능보다 미학과 구조 실험에 무게를 두었지만, 그 미학이 이후 세대의 기준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2000~2010년대: 지속 가능성과 지역성의 부상
2000년대에 들어서며, 건축계의 화두는 ‘멋’에서 ‘책임’으로 이동했습니다. 기후 변화, 도시 집중화, 지역 정체성 상실 같은 문제들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자하 하디드(2004)는 여전히 대담한 곡선과 동적인 형태를 선보였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의 동선과 공간 경험을 치밀하게 설계했습니다.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와 MAXXI는 화려한 외형뿐 아니라, 내부의 흐름과 기능적 완성도에서도 주목받았습니다. 피터 줌토르(2009)는 ‘자리의 건축(architecture of place)’을 실천했습니다. 그는 건물이 서 있는 땅, 바람, 햇빛, 소리까지 고려해 설계를 했고, 결과적으로 주변 환경과 건물이 한 몸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왕수(2012)는 중국의 전통 건축 방식과 현대 설계를 결합해, 대도시와 농촌 모두에서 적용 가능한 디자인을 제시했습니다. 이 시기의 건축은 ‘에너지 절약’ 같은 기술적 목표를 넘어서, 지역과 환경, 사람의 생활 방식이 하나의 설계 철학으로 묶이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2020년대 이후: 사회적 가치와 포용성 중심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프리츠커상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놓기 시작했습니다. 건축은 더 이상 도시의 랜드마크를 세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교육, 복지, 주거 불평등 해소 등 사회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프란시스 케레(2022)는 부르키나파소에서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학교를 짓고, 지역 재료를 활용해 유지 비용을 최소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건축이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2023)는 역사 보존과 도시 재생의 균형을 맞추는 데 탁월했습니다. 그는 오래된 건물의 외관을 살리면서도 내부를 현대적으로 개조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공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의 핵심 키워드는 세 가지입니다.
포용성 — 사회적 약자의 요구가 설계에 반영됨.
참여형 건축 — 지역 주민이 직접 과정에 참여함.
통합적 접근 — 환경, 사회, 경제 요소를 함께 고려함.
이는 건축을 ‘사람을 위한 실천’으로 재정의하는 흐름입니다.
세 시기를 비교해 보면, 건축의 역할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가 명확해집니다. 1980~90년대에는 형태와 재료 실험이, 2000~2010년대에는 지속 가능성과 지역성이, 2020년대 이후에는 사회적 가치와 포용성이 중심에 섰습니다. 건축을 배우거나 실무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흐름 속에서 미학, 기술,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대가 바뀌어도 의미 있는 건축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