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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의 여왕' 자하 하디드의 건축

by wasabi-soso 2025. 8. 9.

자하 하디드(Zaha Hadid)는 21세기 건축의 흐름을 뒤흔든 인물입니다. '곡선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죠. 그녀의 작품을 보면, 건물이 중력을 무시한 채 공중에서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사진으로 봐도 충분히 놀랍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면 차원이 다릅니다. 이번 글에서는 자하 하디드의 대표작 다섯 곳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공기와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담아, 단순한 건축 해설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헤이더 알리예프 센터 – 곡선이 춤추는 곳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도착하면, 도시 한복판에서 부드럽게 흐르는 하얀 건물이 시선을 끕니다. 바로 헤이더 알리예프 센터입니다. 직선이 거의 없는 외관은 멀리서 보면 바람에 흩날리는 천 같기도 하고, 얼어붙은 파도 같기도 합니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바깥에서 본 곡선이 그대로 이어져 공간을 감싸는데, 마치 내가 건물 속을 걷는 게 아니라, 곡선 위를 미끄러지는 기분이 듭니다. 낮에는 햇빛이 흰 외벽에 부드럽게 번지고, 밤에는 조명이 스며들어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만듭니다. 개인적으로는 해 질 무렵, 노을빛이 외벽에 비칠 때가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 – 강물 속의 돌

중국 광저우의 오페라 하우스는 첫인상이 독특합니다. 마치 강물 속에 오랜 시간 잠겨 있다가 매끄럽게 깎여 나온 돌덩이 두 개가 놓인 것 같습니다. 건물 사이로 걸어가면, 그 곡선 사이로 바람이 불고 햇빛이 스쳐 지나갑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곡선 계단이 시야를 부드럽게 끌어내려 공연장으로 안내하죠. 소리도 공간의 곡선을 따라 흐르는 듯 퍼집니다. 저녁 공연이 끝나고 나와서 강물에 비친 조명을 보면, 이 건물이 왜 '광저우의 심장'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런던 아쿠아틱 센터 – 물결 위의 지붕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런던 아쿠아틱 센터는 멀리서 보면 물결이 그대로 지붕 위에 얹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붕 곡선은 금속 패널로 이루어져 있는데,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내부에 들어서면 그 곡선이 소리를 부드럽게 흡수하고 반사해, 수영장 특유의 소음이 훨씬 잦아든 느낌이 듭니다. 라커룸에서 수영장으로 걸어 나가는 순간, 탁 트인 공간과 파도 같은 지붕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때 느껴지는 해방감이 참 좋습니다. 건축이 스포츠 경험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직접 느끼게 해 줍니다.

옥스퍼드 인베스트코프 빌딩 – 전통 속의 미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캠퍼스를 걷다 보면,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은빛 곡선이 스르륵 지나가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니스프리 인베스트코프 빌딩입니다. 마치 금속 리본이 바람을 타고 지나가는 것 같아요. 오래된 건물과 나란히 서 있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더 돋보이게 합니다. 내부는 의외로 단정하고 기능적인데, 외부의 자유로운 곡선과 대비를 이루죠. 좁은 부지를 이렇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서울 한복판의 우주선

서울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DDP를 봤을 겁니다. 하지만 자하 하디드의 시선으로 보면 이 건물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알루미늄 패널 수만 장이 이어져 만들어낸 곡선은, 마치 거대한 우주선이 도심에 착륙한 듯합니다. 내부는 전시관과 패션 쇼장, 마켓 등이 연결돼 있어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다른 공간으로 옮겨와 있습니다. 밤에는 조명이 켜져 은빛 곡선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건물 자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이곳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여행 팁과 마무리

자하 하디드의 건축을 제대로 느끼려면, 건물 밖에서 멀리서 보는 것과 안을 걸어 다니는 시간을 모두 가져야 합니다. 멀리서는 실루엣과 전체 구도를 볼 수 있고, 안에서는 곡선이 만드는 시선의 흐름과 공간감을 체험할 수 있죠. 아제르바이잔, 중국, 영국, 한국 등 여러 나라에 작품이 흩어져 있으니, 여행지에 맞춰 계획을 세우면 좋습니다. 그녀는 “건축은 흐름과 연결의 예술”이라고 했는데, 직접 그 안을 걸어본 사람만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행자의 발걸음이 건물의 곡선을 따라 움직이는 그 순간, 공간이 말을 걸어옵니다.